말씀묵상(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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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1,10]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2024. 7. 24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나를 믿고 세상을 믿었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동안 세웠던 세속과 나의 왕국을 먼저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변화이며 도전입니다. 도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나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세우기에는 용기도, 능력도, 게다가 기운마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는 ‘나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것을 무너뜨리는 것도,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도, 모두 ‘너를 위한’것, 사랑 때문입니다. 나의 변화를 통해 너에게 무언가 유익이 될 수 있다면. 갑자기 용기가 생기고 기운이 납니다. 지금껏 미뤄왔던 변화의 목록들에 희망의 ..
2024.07.24 -
[미카 7, 19]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24. 7. 23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명나라때 왕양명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好惡)은 옳고 그름(是非)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하느님이 주신 마음은 옳은 것을 좋아하고 그른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들은 종종 내게 닥친 시련 앞에서 내 자신과 세상과 하느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련에 더해 좌절과 슬픔에 빠져들게 됩니다. '죄'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는 것.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시련이 기쁜 일은 아니지만 그 때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기대어 '인내'하는 것', '옳은 것'을 '좋아하려는' 기도이며 공부입니다. 설사 시련이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나를 잃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좋아..
2024.07.23 -
[요한 20,17]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2024. 7. 22 월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광경(光景)' 한때 지나가는 그림자라는 의미로, 한 번 깨달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마땅히 마리아의 사랑과 열정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만 오늘 복음 말미에서 당신을 붙들지 말라 하신 대목을 말씀씨앗으로 선택했습니다. 잃었던 주님을 찾은 여인에게 하신 말씀치고는 다소 냉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이 경직된 '교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신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한번쯤은 예수님에 대한 뜨거움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는 법.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고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때의 뜨거움에 집착하게 되면 우리의..
2024.07.22 -
[마르 6,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2024. 7. 21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측은히 여기는 마음. 예수님의 인류 구원은 바로 이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분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위대함에 생각을 집중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제자들도 측은히 여기시고 군중들도 안타깝게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확장되어 당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처럼 말입니다. 수녀님의 놀라운 희생정신에 경외감을 지녔던 어느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돌보실 수 있었냐고. 그러자 수녀님은 의아하다는 듯 대답합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을 돌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내 앞에 있는 가련한 그 한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했을 뿐입니다” 성체성사와 교회를 통해 우리..
2024.07.21 -
연중 나해 15주일
정원을 거닐때면, 피어나는 꽃들로 내 마음에도 웃음꽃이 피어나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누군가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말합니다. “그 때 하느님이 내 마음속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 주변을 둘러 보아라. 내가 너를 위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단다. 그러니 내가 너를 만든 까닭도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서란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은 저 혼자 있기 위해서 살아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들을 다른 존재하는 것들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꽃이 나를 위해 피었다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 피고 지는 것.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내가 가진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나눌수록 그만큼 더 내 자신이 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된다는 것은 늘..
2024.07.19 -
[마태 12,8]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2024. 7. 19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는 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엄격하고 매정한 심판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심리학에 슈퍼에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슈퍼에고는 인간 마음안의 엄격한 '아버지'입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행위들을 평가하여 죄책감을 일으키게 합니다. 도덕적인 경계를 형성하게 하지만 그 강압이 심해지면 지나친 자기 비하를 낳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심판하시는 하느님은 슈퍼에고와 유사합니다. 엄격한 잣대로 우리를 혼내고 두렵게 하는 강압적인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였지 세세한 윤리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
202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