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91)
-
[마르 15,31]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십자가의 예수님을 지켜보던 자들이 비아냥거리며 한 말입니다. 비웃기 위한 말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구원하면서도 자신은 살리려 하지 않는, 바보 같은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 사랑으로 자라고 유지됩니다. 그 사랑은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이어서 하느님은 자신을 위한 어떤 것도 남겨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은 끝까지 용서하고 참아내는 사랑이어서 탓하거나 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신실한 사랑이어서 당신의 약속과 계약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당신을 죽이려는 인간의 무도한 계획 앞에서 저항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죽어 가신 것입니다. 그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원래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가장 높은 분이며 가장 강한 분이..
2024.04.04 -
[요한 10,38]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더 보여 주셔야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피 범벅이 된 육신과 사람들로부터 능멸당하는 그 고통을 받아들이시는 이유가 뭐냐고. 하지만 주님은 말 없이 수난과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마치 알려 주고 싶은 것을 목숨을 내걸고라도 증명해 보여주고 싶으신 것처럼. 도저히 믿지 못하는 무뎌진 우리 마음이 그 고통과 슬픔을 보고 조금이라도 움직이길 바라시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고, 그래서 즐겁기도 했지만 죄로 물들었고 아프고 슬픕니다.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제 어미가 방황하는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슬피 우짖듯이 당신의 온 몸을 찢기우며 돌아..
2024.04.03 -
[요한 8,58]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돌을 들어 던지려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메시아는 한 나라를 구할 임금일 뿐, 하느님은 아니시다’라는 태도표명입니다. 유다이즘 안에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그들을 속박에서 구제해줄, ‘이 세상에 속한’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넘어선,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와 버렸으니 그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우리들의 일상이 천상적이지 않으니 그분의 오심이 우리에게는 ‘뜻하지 않은’ 균열이며 충격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만나고 있을 다양한 고통들과 슬픔들은 예기치 못한 메시아적 징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2024.04.03 -
[요한 8,31-32]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오늘은 긴말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과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하셨으니, 그 분의 제자로 살기 위해 오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 말고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위의 말씀 안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에도 머무셨으면 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4-36) 문장 전체의 맥락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음에 와 닿은 말씀 구절을 하루의 양식으로 삼아 그 안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2024.04.03 -
[로마 4,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희망'하는 아브라함은, 그래서 '믿음의 선조'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고향을 떠난 아브람.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생각과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希望)이란 글자가 그렇습니다. 희(希)는 '바라다'라는 뜻 외에 '드물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참으로 희망하려면 자신의 생각이 '드물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많을수록 하느님의 자리가 좁아지게 되고 쉽게 좌절하여 희망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설계하고 계획한 것은 목표이지 희망은 아닙니다. 이 시대, 혹은 나의 상황에 희망이 없다 해도 여전히 희망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추신)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
2024.04.03 -
주님 부활 대축일-낮미사
봄이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성모상 뒤편에 하얀 목련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것인가 아니면 꽃이 피니 봄이 오는가 물었지만 봄은 꽃이 있어야 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부활입니다. 그제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하던 우리에게 오늘은 갑자기 봄이 오듯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수난하고 죽었으니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봄은 꽃을 타고 오지만 우리의 부활은 무엇을 타고 오는 것일까요? 교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선포하니 부활이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절에 교구장님의 부활 메시지를 낭독합니다. 저도 메시지를 읽어 드리려 하다 주보에 이미 공..
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