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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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8, 24]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며 즐거워 하세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거나 소유하려 하면 그것은 우리를 비껴 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미래의 일로 만들어 버려 소중한 지금 이 순간들을 허비해 버립니다. 게다가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행복은 현재를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듭니다. 행복은 선물처럼 주어진 이 순간에 눈을 뜨는 것. 예수님의 부활도 외적으로 보면 어제까지와 똑같은 日常으로의 복귀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분의 일상이 기억된 갈릴레아로 가라하신 것입니다. 다만 제자들은 거기서 어제와 똑 같지만 매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새로운 일상을 만날 것입니다. 잃어버렸다 여겼던 행복의 주인이 귀환했기 때문입니다. 봄이 오듯이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미래에 유보하지 말고 조급..
2024.04.15 -
[마태, 28,8]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자포자기(自暴自棄). 포기한다는 말로 쓰이지만 한자의 의미는 더 치명적입니다. '스스로 포악하게 하여 내 버린다' 단순히 포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인들이 떠난 곳도 시신이 안치된 장소로서의 무덤이 아니라 스스로 희망을 소멸시킨 ‘옛 삶’으로서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던 과거. 그러니 죽음을 끝이라 여겼고 희망을 스스로 무덤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자신에 대한 폭력이며 진짜 죽음입니다. 그런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녀들을 무덤에서 빼내 주십니다. 부활은 한 인간을 죽음에서 일으킨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줍니다. 부활이란 희망을 포기하..
2024.04.15 -
부활 3주일
육체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관들의 총합은 아닙니다. 육체는 한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릇입니다. 제 왼쪽 팔뚝 안쪽에는 붉은 색 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그 점을 보면서, 아이구 우리 아들 나중에 잃어버려도 이 점만 보면 찾을 수 있겠네. 그런데 말이 씨가 됐는지 예닐곱 살이었을 때 영등포 시장에서 정말로 어머니를 잃어 버렸고 시장 안내방송에서 왼쪽 팔뚝에 붉은 점이 있는 어린아이의 부모님을 찾는다는 방송을 통해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 어머니의 목소리며 시장에서 헤맸던 일, 다시 상봉하여 울음을 터뜨린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점이 눈에 띄는데 있었으니 다행이지 엉덩이나 뭐 그런데 있었으면 참 곤란했겠다 하는 생각도 해 ..
2024.04.14 -
부활 2주일
현대인의 삶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교우분들도 ‘아이고 우리 신부님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교우분들에게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인 걸까 아니면 그냥 하시는 말씀일까. 저는 후자일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바쁘다는 말은 일상적인 생활을 표현하는 습관적 언어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는 건 뭘까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들, 그냥 해야 할 일들을 할 때 바쁘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바쁘다는 생각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쫒기는 삶.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안에서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먼저 찾아와 간섭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2024.04.14 -
[사도 10,40-41]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한 인간이라도 ‘그분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용서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삶의 기준이 잘 먹고 잘사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면 하느님의 용서라든가 영원한 생명이라든가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주술적인 주문과도 같은, 무의미한 언어들의 나열일 뿐입니다. 그러한 나는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신앙인’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래서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
2024.04.09 -
[이사야 52,13―53,12] 주님의 종 넷째노래
제가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죄가 될 듯합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 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