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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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1,21]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술을 끊고 싶었으나 번번이 실패하던 사람에게 수도승이 ‘성경’을 읽으라고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하다고 하자 수도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계속 열심히 읽으십시오. 어느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악령들이라도 그대가 읽는 것을 알아듣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나 영성서적의 독서를 통해 앎의 기쁨을 얻거나 뚜렷한 영적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 편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영신적 보호를 받고 있으며, 하느님을 지향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기도임을 잊지..
2024.04.01 -
[마태 5,17]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서 모든 것을 지워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미운 내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이미 허락했었던 일들이며, 잘 들여다보면 나의 못난 모습은 내 장점의 뒷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인 성격은 일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지만 자칫 타인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타인을 돌보지 못하니 열정적이지 말라고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들을 도려내고 좋은 것만을 선별하여 이루어지는 성장이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율법을 ‘폐기’ 하는 것이 아닌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나쁜 것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얻은 교훈을 더하여 더 완전한..
2024.04.01 -
[마태 18, 22]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호기롭게 말합니다. 형제들이 나에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베드로의 이 말에는 일곱 번 용서한 것만으로도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교만함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생각을 정확히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주인에게 만 탈렌트를 빚진 죄인’임을 상기시킵니다. 만 탈렌트는 대략 3조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스스로의 반성만으로는 용서 받을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만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러한 교만함으로 인해 더 나쁜 상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교만함은 지금까지의 정직함이나 순결함을 단 한번에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며, 그로 인해 ..
2024.04.01 -
[강론] 2024년 나해 사순 1주일
오늘은 사순 제 1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때가 차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선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개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회개. 희랍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메타노이아의 ‘메타’는 ~을 넘어서란 뜻입니다. ‘메타피지카’는 피지카를 넘어, 영어로 이야기 하자면 메타피직,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선, 그럼 어떤 학문일까요? 형이상학. 한자로도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形而上學, 형체를 지닌 것 보다 위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학문입니다. 메타버스라는 말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버스는 시내버스가 아니라 유니버스(Universe), 그러니까 현실의 세계 너머, 가상 세계인 것입니다. 그럼 메타노이아는 무슨 뜻일까요? ‘노이아를 너머선’이란 뜻이겠죠. 노이..
2024.03.11 -
[루카 4, 30] 예수님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셨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데 알아보지 못하는 완고함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인간의 선입견과 그 틈사이에 피어나는 하느님 신비를 보여줍니다. 나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는 아람임금의 요청에 이스라엘 임금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나 보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시라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르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자 나병을 고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냐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의 권유로 엘리사의 말대로 하자 몸이 깨끗이 치유됩니다. 복음에서는 나자렛에서 특별한 것이 나올 수 없다던 그들의 선입견을 깨고 메시아가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2024.03.11 -
[요한 2,19]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성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면에서 거룩하지만 하느님을 그 안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위험한 공간을 상징합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을 성전에 구속시켜서는 자기 편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겨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예물 바치고, 주일 미사 참례하고는 이정도면 할 일을 했다고 여깁니다.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게 도망치듯 성당을 빠져 나갑니다. 일상은 개선되지 않고 같은 괴로움과 후회가 반복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편의에 의해 쌓아올려진 신앙의 벽돌은 의미 없는 나만의 성전을 마음속에 건축하게 됩니다. 그 안에 계신 분은 하느님이 아닌 우상화된 자신입니다. 신앙은 자기 안으로 숨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희생을 감내하며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밖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
20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