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1)
-
[로마 4,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희망'하는 아브라함은, 그래서 '믿음의 선조'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고향을 떠난 아브람.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생각과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希望)이란 글자가 그렇습니다. 희(希)는 '바라다'라는 뜻 외에 '드물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참으로 희망하려면 자신의 생각이 '드물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많을수록 하느님의 자리가 좁아지게 되고 쉽게 좌절하여 희망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설계하고 계획한 것은 목표이지 희망은 아닙니다. 이 시대, 혹은 나의 상황에 희망이 없다 해도 여전히 희망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추신)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
2024.04.03 -
주님 부활 대축일-낮미사
봄이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성모상 뒤편에 하얀 목련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것인가 아니면 꽃이 피니 봄이 오는가 물었지만 봄은 꽃이 있어야 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부활입니다. 그제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하던 우리에게 오늘은 갑자기 봄이 오듯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수난하고 죽었으니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봄은 꽃을 타고 오지만 우리의 부활은 무엇을 타고 오는 것일까요? 교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선포하니 부활이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절에 교구장님의 부활 메시지를 낭독합니다. 저도 메시지를 읽어 드리려 하다 주보에 이미 공..
2024.04.03 -
주님부활 대축일-파스카 성야
내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영화 ‘변산’에서 시인을 꿈꾸던 젊은 청년이 지은 싯구절입니다. 노을이 아름다웠던 주인공의 고향. 한때는 만선의 꿈들이 넘실거렸던 변산의 작은 항구, 이제 모두 떠나간 폐항에는 슬픈 듯 붉게 물든 저녁 노을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찬연히 빛나는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가난한 마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뽐낼만한 그 어떤 것이 없었으므로 아름다운 노을이 자신만의 광채를 온전히 뽐 낼 수 있었던 것. 동시에 아름다운 노을로 그 마을의 가난은 이제 더 이상 추하거나 슬픈 것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아 보잘 것 없고 가난한 것들이 뿜어내는 처절한 아름다움이여! 저..
2024.04.03 -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오늘은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사순시기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예절입니다. 지난 40여일은 오늘을 향해 달려온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텅 빈 것 같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악기의 소리도 사라지고, 감사 미사도 사라졌으며, 제대를 덮고 있던 제대포도, 성당 곳곳의 성상들도 가려진 그런 날입니다. 이는 영광스런 모든 것들이 주님의 죽음으로 사라짐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꿈꾸고 희망했던 모든 일들이 그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음도 아울러 상징합니다. 또한 새로운 생명을 움터내기 위해 제 모습을 썩게 만드는 씨앗처럼, 봄의 새 생명을 틔우기 위해 모든 것들을 떨구어 낸 겨울 나무처럼, 이 시간은 지금까지 세상이 욕망했던 것과는 다른, 사랑의 새 생명을 ..
2024.04.03 -
2024년 주님만찬 성목요일
2024 성목요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밤입니다. 군중들의 열광과 환호를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끝까지라고 하시니 처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작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일 수 있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자니 예수님께서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공생활 준비로서의 광야유혹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의 유혹을 오늘 이밤, 단순히 이겨내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광야에서의 첫 번째 유혹은 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해 보라’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2024.04.03 -
[요한 12,27]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가장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없이 온갖 능욕을 당하면서 이리저리 짓밟히는 무고한 죽음. 하느님은 그 길을 선택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 죽음을 나는 피하지 않는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고통으로만 끝나는 삶은 없다. 나의 이 죽음은 너희들의 고통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기 위해 택한 나의 길이다. 다른 수많은 기적과 표징들은 너희에게 참된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영광'의 그림자가 남아 있으며 그래서 고통을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죽음은 더 할 수 없는 비참이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슬픔이며, 나의 홀어머니에게는 무너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가..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