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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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0,18]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면,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치맛바람과 함께 등장하고, 예수님이 마실 잔을 겁도 없이 마시겠다는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그 두 형제를 불쾌히 여기는 제자들, 이런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 등등.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잊고 있던 정말 중요한 사실 하나. “나는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슬픈 고백입니다. 어느 순간 이 말씀이 인간들의 뒤범벅이 된 욕망과 투쟁에 의해 화면 저 편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나·는·곧·죽·을·것·이·다· 이 때 모든 것을 멈췄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질투와 불안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 등등 모두를. 그리고 미안해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도 혹시, 어디..
2024.03.11 -
[마태 23,11]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우분들은 사제들에게 ‘성인 사제 되시라’고 인사합니다. 예전에는 그 인사가 하나의 덕담이지 실현 가능한 일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성인’이란 너무나 대단한 존재여서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라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을 지향하지 않는 사제직이란게 있기는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제직이란 적당히 직무에 임하는 직업일 뿐이며 그런 사제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섬김을 사는 신앙인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은 단순한 친절이나 일회적 봉사가 아니라 꽤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제때에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하는, 한마디로 섬김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삶 외에 또 다른 신앙인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인사제가..
2024.03.11 -
[마르 9,7]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 앞에 등장한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눈부시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봉헌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초막을 지어 이 영광스런 사건을 두고두고 보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앞에서 하느님은 영광스런 사건을 멈추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평범한 일상의 얼굴을 한 예수님만이 그들 곁에 서 계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영광스러운 메시아가 아니라 수난과 죽음을 맞이해야 할 비참한 야훼의 종을 만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들이 참다운 제자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소유하고 싶었던 과거의 영광스런 변모가 아닌 피하고 싶었던 스승의 수치스런 죽음을 통해서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