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일

2024. 4. 14. 16:04말씀묵상/강론

 

현대인의 삶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교우분들도 아이고 우리 신부님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교우분들에게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인 걸까 아니면 그냥 하시는 말씀일까. 저는 후자일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바쁘다는 말은 일상적인 생활을 표현하는 습관적 언어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는 건 뭘까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들, 그냥 해야 할 일들을 할 때 바쁘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바쁘다는 생각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쫒기는 삶.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안에서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먼저 찾아와 간섭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고, 불안하고 뭔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속이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자신이 빠진 헛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고 쫒기는 듯 사는 삶은 자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삶도 아닙니다.

 

수피의 우화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짐을 운반해 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다. 그들은 사흘 동안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탐험가는 잔뜩 화를 내며 예정된 날짜 시간까지 목적지에 꼭 도착해야 한다며 짐꾼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 원주민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탐험가는 원주민 한 사람을 붙들고 이유를 물어 봤다. 지금껏 잘 오다가 갑자기 주저앉은 이유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 원주민은 말했다.

"우리는 이곳 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우리를 따라 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외적인 성과와 성공에 매몰되어 바쁘게 사는 것이 마치 자랑과도 같은 우리의 삶.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안에 내 자신은 사라져 있고 삶의 기쁨이나 소중함도 잊혀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의 이야기처럼 너무 바삐 달려오는 바람에 내 영혼은 우리의 삶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속이 빈 삶입니다. 내 속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과 이웃들도 공허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 뿐 아니라 지난 부활 8일축 제 기간 동안의 복음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마다 하는 인사. “평안하냐?”, 혹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메시아로 여겼던 자신들의 스승이 비참한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자신들은 무엇을 희망하며 살았던 것일까? 혹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에 반하여 화려한 영광의 임금님 메시아를 모시러 했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숨돌리 틈도 없이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스승 예수님을 이용했던 것은 아닐까? 스승의 죽음은 이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멈춤이었고, 돌아봄의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완전한 실패라고 여긴 순간 그들은 문을 닫아걸고 이제 외적인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시작합니다. 그 때 바람처럼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마치 급하게 달려온 원주민들에게 뒤 늦게 찾아온 영혼처럼, 그렇게 예수님은 찾아오셨고, 그들에게 인사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돌이켜 보면 지난 시간들은 성령과 떨어졌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빠진 삶,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삶.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했지만 깊게 돌이켜 보면 자신의 계획과 욕망으로 살았던 삶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처럼 영혼 없이 살아왔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것이죠. 토마스의 의심도 흥미롭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는 예수님의 육체를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야 부활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외적인 것, 합리적인 것에 기대어 하느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또 한번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모든 것이 검증되고 확인되는 것을 바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너머에 계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행위, 바로 신뢰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봄이 무르익어 꽃들이 만발한 부활 2주일입니다. 부활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삶 안에 참다운 내가 있었는지, 그리고 나는 그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한번 쉼 호흡하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그 말씀 따라 살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미사중에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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