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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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8,12]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2024. 12. 10 대림 제2주간 화요일오늘 말씀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보다 남겨진 아흔아홉 마리 양이 더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길 잃은 한 마리 양, 혹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하지만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잃어버린 양을 그리워하며 함께 기도하는, 주인의 든든한 후원자며 협조자입니다. 나머지 양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주인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일 때도 있고, 든든한 후원자로서의 아흔 아홉 마리 양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라면 어서 아버지께 돌..
2024.12.10 -
[창세 3,10]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2024. 12. 9. 월요일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巧言令色鮮矣仁(말을 잘 꾸미고 얼굴 빛 좋게 하는 사람 가운데는 어진 이가 적다)' 공자의 말입니다. 감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꾸밀 것도 많아집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은 뒤, 자신의 알몸이 부끄러워 몸을 숨깁니다. 우리도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감추며 외적인 것들로 겹겹이 자신을 꾸밉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면 자신의 비천한 모습이 탄로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처럼,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자신의 비천함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불어 넣어주신 '숨',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지금의 내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2024.12.09 -
[마태 9,27]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2024. 12. 6 대림 제1주간 금요일오늘 말씀 씨앗은 복음에 등장하는 눈먼이들이 예수님께 외친 기도입니다. 본다는 것은 눈이 하는 일 같지만, 사실 참으로 보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가야 할 곳을 비춰주는 것은 눈이며 그 눈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루 종일 많은 것을 보지만 우리의 시선은 내 마음에 따라 정해집니다. 또 같은 것을 보면서도 누구는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반면 누구는 불평과 불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눈먼 이들은 왜 자신들의 치유를 위해 먼저 ‘눈을 보게 하여 주소서’라 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어 주십시오’라고 하였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보기 위해서는 눈을 청소..
2024.12.06 -
[마태 7,24]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2024. 12. 5 대림 제1주간 목요일오늘 복음은 집을 짓기 위한 기초가 무엇인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반석인가, 모래인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내 삶을 무엇에 기초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세류에 따라 지형이 바뀌는 세상의 가치인가, 아니면 어떠한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인가.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석 위에 기초를 세운 뒤 견고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집을 쌓아 올리는 노력과 실천의 시간들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반석 위에 기초를 놓긴 했지만 수수깡으로 대충 집을 짓는다면 비가 내리고 강물이 범람하는 순간,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신앙인이 된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한 것이지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시민권..
2024.12.05 -
[마태 15,34] 빵 일곱 개와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2024. 12. 4대림 제1주간 수요일사흘 동안 당신 곁에 머물며 제대로 먹지 못한 군중들이 가여웠던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고작 빵 일곱 개와 물고기 조금. 인간의 계산으로는 터무니없는 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군중을 먹이십니다. 복음의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빵 일곱 개가 갑자기 빵무더기로 변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바구니’에 담긴 빵을 옆 사람에게 줍니다. 전달되는 것은 여전히 소박한 빵 일곱 개의 바구니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나눈다고 할 때, 우리의 가진 것은 언제나 소박합니다. 하느님은 그 소박함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새로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저도 말씀 씨앗을 쓰면서 이러한 체험을 종종합..
2024.12.04 -
[루카 10,22]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024. 12. 3. 화요일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싶어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을 마음에 품고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머리’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해야 할 것은 하는 마음, 어린이의 순종적인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러한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만 이 ‘성령’은 시간이 지나면 그분을 ‘고통’에 휩싸이게 할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단순함으로 순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외에는, 또 아버지를 보여주려 하는 사람 외에는..
202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