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0)
-
[마태 21,27]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하고 대답하였다.
2024. 12. 16대림 제3주간 월요일知行合一(지행합일). 앎과 실천이 하나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앎이 생각으로만 머물 때 그것은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여러 가지 기적과 말씀을 선포하냐고 묻자 예수님이 되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왜 그를 믿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고, 사람에게 온 것이라고 하면 당시 요한을 추종했던 군중으로부터 봉변을 당할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모르겠소'라고 답합니다. 진리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 유불리만 '계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타인의 평가나 자신의 이익만을 따..
2024.12.16 -
대림 2주일 다해
대림 2주일은 1982년부터 교회에서 ‘인권주일’로 지정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오랜 시간 인권에 대한 잔혹한 침탈이 있었고,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권리가 온전히 존중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권에 대한 존중이 말살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인권주일이며 이번 한주간은 사회교리 주간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지..
2024.12.14 -
[이사 4.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2024. 12. 13. 금요일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하느님의 십계명을 떠올려 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단 하루만이라도 그 분을 위해 나의 시간을 봉헌할 수 있기를. 부모님께 감사하고 형제들과 우애 있게 지냈으면. 내 안의 욕망으로 사랑을 쾌락과 욕정으로 오염시키지 않기를. 내가 가진 것들, 재산이나 재능에 감사하고, 그래서 질투하거나 욕심내지 않으며 하느님 앞에 정직할 수 있기를.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이에 덧붙인다면,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도록 하는 것이며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음을 자각하여 내 이웃을 용서할 수 있길 청합니다. 우리는 나를 자랑하려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의 우열과..
2024.12.13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 중]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2024. 12. 12 대림 제2주간 목요일오늘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 일부를 올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
2024.12.12 -
[이사야 40,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2024. 12. 11 대림 제2주간 수요일온종일 업무와 일상으로 피곤에 지치고 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짜증은 피곤함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곤함이 늘 짜증을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풍놀이 하느라 하루 종일 산길을 걷다 오면 몸은 피곤하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일을 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슬픔, 혹은 짜증은 업무의 과도함에 있다기 보다는 내가 마주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습니다. 슬픔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하루를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현실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삶’은 바뀝니다. 삶이 바뀌면 이어서 현실도 변화되는 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시고 그것을 배우라 하십니다. ..
2024.12.11 -
[마태 18,12]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2024. 12. 10 대림 제2주간 화요일오늘 말씀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보다 남겨진 아흔아홉 마리 양이 더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길 잃은 한 마리 양, 혹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하지만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잃어버린 양을 그리워하며 함께 기도하는, 주인의 든든한 후원자며 협조자입니다. 나머지 양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주인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일 때도 있고, 든든한 후원자로서의 아흔 아홉 마리 양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라면 어서 아버지께 돌..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