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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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12월 23일 월요일마더 데레사의 침묵에 대한 시. “침묵의 열매는 기도요,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요, 믿음의 열매는 사랑이며, 사랑의 열매는 섬김이고, 섬김의 열매는 평화이다” 오늘 우리는 잠겼던 입이 열리는 즈카르야를 만납니다. 하지만 즈카르야의 침묵은 하느님만의 결정은 아닌 듯 합니다. 입이 닫힌 것 만으로는 침묵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입을 열지 않아도 마음은 오만가지 생각과 말로 소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오늘 복음처럼 글 쓰는 판에 쏟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열달동안 스스로말을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벳이 태 속에 요한을 품고 키워냈다면, 즈카르야는 그 시간 동안 침묵으로 말씀을 품고 키워낸 것입니다. 키워낸 말씀은 그의 아들을 통..
2024.12.23 -
[루카 1,28]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2월 20일 목요일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오늘의 말씀씨앗은 두 구절입니다. 하나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했던 말씀이고, 또 하나는 성모님의 응답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과 관계의 그물망을 연결하여 우리를 존재케 하고 이끌어 주십니다. 이 신비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특정한 순간에 이정표를 알려주십니다. 이틀 전 가브리엘은 요셉에게 꿈을 통한 용기를 주셨고, 어제의 가브리엘은 즈카르야에게 부족한 믿음을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가브리엘은 구세주 탄생의 희망을 전해줍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은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
2024.12.20 -
[루카 1,20]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024. 12. 19. 목요일우리의 죄는 많은 경우 ‘말’을 절제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내 안에 분노와 비난이 있다해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한번 발설되면 내 안의 어두움이 듣는 사람에게까지 확산되고, 그 어두움은 다시 나에게 도달하여 증폭되며 여러갈래의 또 다른 가지들로 뻗어갑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은 우리의 돌봄을 통해 성장하지만 악한 영의 씨앗은 방심하는 사이 커져 갑니다. 말씀의 씨앗은 나의 ‘노력’을 동반하므로 ‘나의’ 열매를 맺지만 악한 영의 씨앗은 나의 무관심을 틈타 자라나므로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성장한 나쁜 나무를 내 마음에서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기에 물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물을 주지 않는 좋은 방법 가운..
2024.12.19 -
[마태 1,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2024. 12. 18. 수요일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그녀에게 치욕적인 벌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성모님을 떠나보내도록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의로움은 명철한 이성과 실천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결같이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에 열려있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내면의 소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같은 천사의 소리를 흘려듣지 않았고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인간의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아내로 다시 맞아들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잘못을 합리적인 잣대로만 평가하게 되면 상대방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
2024.12.18 -
[마태 1,16]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2024. 12. 17. 화요일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복음사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족보를 42대에 걸쳐 서술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까지는 모두 '남성'이 누군가를 '낳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인간적 '혈통'에 대한 서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탄생에 대한 표현에 있어 주어는, 그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니라 낳음을 받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탄생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성모님에게서 '비롯'됩니다. '성령'에 의한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요셉에게서 끝이 나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하느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인간의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에 의한 역사입니다. 훗날 '누가 내 형제이며 자매인가?'라는 예수님..
2024.12.17 -
대림 3주일 다해
얼마 전 미사 때, 그리고 말씀씨앗에서 작가 한강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략 4분여의 짧은 문장이었지만, 역시 작가답게 단어 하나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고, 그 내용은 하나의 긴 서사가 담긴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가 있습니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문장에 나오기 앞서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학은)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
20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