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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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나해 31주일
세상 모든 것은 나름의 쓰임새가 있습니다. 크던 작던, 화려하던 소박하던.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한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사랑의 계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10계명이나 613조에 달하는 율법이나, 결국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어낸다는 것이며 읽어낸 마음에 공감하고 그것을 위해 나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내가 ‘쓰여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읽어내고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하는 것, 바로 ‘소명’입니다. 우리 각자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
2024.11.04 -
[마르 12,30]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2024. 11. 3 연중 제31주일 세상 모든 것은 나름의 쓰임새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어낸다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나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내가 ‘쓰여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읽어내고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하는 것, 바로 ‘소명’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삶의 관계안에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관계 안에서 각자의 소명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마음, 혹은 사랑만 받으려는 욕망으로 관계를 훼손시킵니다. 이 모든 것 안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소명’, 나의 ‘쓰임새’라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명에 충실한..
2024.11.03 -
[마태 5,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024. 11. 1 금요일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 복음에서는 각자의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그 삶을 너머선 새로운 희망과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입니다. 유학시절, 오랫동안 공부를 마무리 하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슬픔을 어떤 원로 신부님께 털어 놓았습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와 함께 저의 부족함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는 위로가 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남들보다 길어진 공부의 기간이 저에게는 콤플렉스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처지가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라는 자신감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부족함도 때론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이나 어려움을 하느님 앞에 꺼내 놓으면 그것은 어느새 새로운 ..
2024.11.01 -
[시편 105,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2024. 10. 31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주님을 찾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일입니다. 자겸自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여 흐뭇하다는 뜻으로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손동작 하나까지도 자신 안의 하느님 소리에 귀 기울여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적인 평가에 매이지 않으므로 그것이 옳은 일이면 합니다. 타인의 구미에 맞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와 하느님만이 아는 만족스러움입니다. 맹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고픔'에 이르게 되고, 반대로 그것을 잘 키우면 내외(內外)가 하나 되어 '호연한 기상(浩然之氣)'을 얻게 된다고도 말합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는 밖에 있어 '이것'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것이 아..
2024.10.31 -
[에페 6,7]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2024. 10. 30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예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어느 수도원이 서로간의 질투와 다툼으로 공동체가 분열되었습니다. 원장 수사님은 공동체가 다시 일치되도록 하느님께 정성들여 기도했습니다. 그 마음이 갸륵했는지 예수님이 나타나 원장 수사님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형제 가운데 한명의 모습으로 공동체를 방문하겠다” 이 소식을 공동체에 전했습니다. 수사님들은 그 때부터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미워했던 형제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예수님 대하듯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의 분열은 사라졌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이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공동체에 예수님께서 방..
2024.10.30 -
[루카 13,19]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24. 10. 29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 것은 겨자씨만의 공로는 아닙니다. 거기에는 흙이 있었고, 물이 있었으며, 태양이 있었고, 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겨자씨가 스스로 몸을 부풀려 큰 나무로 변하는 마술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함께한 역사입니다. 큰 나무라는 이름도, 새들이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머물 수 없는 나무라면 그 크기가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검암공동체라는 큰 나무 그늘에 머물게 되었음에 감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씨앗을 뿌렸고 37년이라는 세월동안 기쁨과 슬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희망하..
202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