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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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9, 27] 네 어머니시다
2024. 5. 20 월요일 저희 어머니는 올해 여든 둘이십니다. 자주 뵙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분이 나에게 무언가 해 주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 큰 힘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모 어머님을 선사해 주십니다. 개신교에서는 천주교가 성모님을 우상 숭배하는 교회라고 비난하지만 저는 오히려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는 그들이 가엾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따른다고 하는데... 성경을 읽고 있으면 성모 어머니가 우리의 구세사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금새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성모님의 응답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머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마음과 친교로 존재하는 한 가족입니다. 그..
2024.05.20 -
[갈라 5, 19-23]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2024. 5., 19 주일 (성령강림대축일)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 5, 19-23)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론 믿음대로 사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삶이 현실 생활을 방해하고 있는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면 위의 9가지 열매는 우리의 현실 생활을 더 풍..
2024.05.19 -
[요한 21,15]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2024. 5. 17 금요일 보좌 신부 때, 미사 후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에게 초컬릿을 나누어 주며 ‘사랑해’라고 말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 어린이가 저에게 다가와 “저기 다른 애들 말고 정말 나를 사랑하는거예요 신부님?”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우리 어린이도 사랑하고 다른 어린이도 사랑해”라고 말했더니 그 아이는 ‘치!’하고 떠나갔습니다. 당혹스러웠지만 그 어린이의 질문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때론 배타적입니다. 특별히 남녀의 사랑은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 때에도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러한 사랑을 물은 것입니다. ..
2024.05.17 -
[요한 17,21] 그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십시오
2024. 5. 16 목요일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제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되신 이유 역시 제자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준 것 같지만 실상 내가 변화됩니다. 그 사람도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변화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여 변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변화의 궁극은 하느님과 예수님, 성령의 일치로서의 사랑, 삼위일체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면 변화되고 변화되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 되게..
2024.05.16 -
[요한 17,14]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2024. 5.15 수요일 오늘은 석가탄신일이니 불교 이야기를 하나 할까합니다.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통과 슬픔은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하지만 때론 고통을 부여잡고, 미움을 마음에 새기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미 벗어날 수 있는 계기들이 있고, 현재에 감사한 것들이 많음에도 우리는 집착에 매어 스스로를 아프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고, 또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들 역시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라는 말씀은 우리 믿는 이들이 세상을 떠난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과 슬픔 가운데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기쁨 속에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024.05.15 -
[요한 15,15]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2024. 5.14 화요일 강론이나 말씀씨앗을 쓸 때 어려운 것은 묵상의 내용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기 검열입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교우분들을 믿고 있는가, 즉 교우분들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教友’라는 말 자체가 이미 '친구'라는 뜻입니다. 친구 사이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믿음(信)'입니다. 오륜에도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할 때 행하는 자기 검열이 꼭 나쁘다 할 수 없지만 믿는 이들 사이의 상호 신뢰를 믿지 못한 것이라 반성하곤 합니다. 친구 사이는 믿음을 갖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하느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오늘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부끄러워..
202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