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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일 다해

2024. 12. 17. 06:55말씀묵상/강론

얼마 전 미사 때, 그리고 말씀씨앗에서 작가 한강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략 4분여의 짧은 문장이었지만, 역시 작가답게 단어 하나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고, 그 내용은 하나의 긴 서사가 담긴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가 있습니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문장에 나오기 앞서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학은)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이라는 1인칭 시점의 생각을 언어라는 실에 매달아 또 다른 1인칭 시점인 너와 그에게 전달합니다. 한가한 말장난이나 유희의 언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언어의 실에 매달아 너와 그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만난 너와 그로서의 독자는 그 언어에 감동합니다. 이미 자신 안에 있었고, 또 말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는 표현해 내지 못했던,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오라기처럼 연약한 언어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작가의 글을 통해 만나고 확인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가 1인칭 시점에서 같은 말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인간이라는 언어가 서로 공명한 것입니다. 그녀가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란 이것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과 지구의 생명체들에 대해 우리가 일인칭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인간을 마음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슬픔, 약자에 대한 공감,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 선한 것에 대한 동경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간다움을 작품이라는 언어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만나고 공감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어서 말합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하얀 백지위에 배겨진, 검은색 자국으로서의 문자를 품은 작품은, 단순한 종이 무더기가 아니라 그 글자 안에 담긴, 그 말 안에 담긴 인간성으로 인해 일종의 체온을 지니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을 만납니다. 그를 메시아로 생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또 다른 복음에서 자신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아오구스티노 성인은 요한이 자신에 대해 정의 내린 이 표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전달할 때 그 과정이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말할 바를 생각할 때 이미 내 마음속에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이 을 상대방의 마음속에 전달할 수단을 찾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말에게 소리를 주어, 그 소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그 말을 전달하게 합니다. 말을 전달한 소리는 그 말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일을 마칠 때 사라지지만 당신에게 전달된 말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채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소리로서의 세례자 요한은 사라졌지만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여전히 지니고 있고, 또 말씀을 믿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말해 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한강작가가 말한 언어라는 씨줄,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라는 소리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긴급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엮어주는 하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고 사람됨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의 생명, 바로 예수님을 통해 몸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탄, 거룩한 탄생인 것입니다. 이미 있던 말씀, 우리 안에 있는 1인칭의 공통된 생각이 사람으로 육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받아 먹고, 그분을 믿어 모든 1인칭들이 사랑의 계명을 나의 몸과 삶을 통해 표현해 낼 때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며, 그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또 다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대림 3주일입니다. 그분을 기다리는 이 시기. 폭력과 미움과 질투와 분노를 걷어내고 빛으로 오시는,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신 그분을 나의 삶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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