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낮미사

2024. 4. 3. 16:00말씀묵상/강론

봄이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성모상 뒤편에 하얀 목련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것인가 아니면 꽃이 피니 봄이 오는가 물었지만 봄은 꽃이 있어야 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부활입니다. 그제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하던 우리에게 오늘은 갑자기 봄이 오듯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수난하고 죽었으니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봄은 꽃을 타고 오지만 우리의 부활은 무엇을 타고 오는 것일까요? 교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선포하니 부활이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절에 교구장님의 부활 메시지를 낭독합니다. 저도 메시지를 읽어 드리려 하다 주보에 이미 공지되어 있으니 각자가 읽으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주교님의 말씀의 핵심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핵심은 기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했던 사람들에게 그 부활 사건은 매우 낯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고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알게 된 것은 살아 생전 해주셨던 예수님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심코 흘려 들었던, 그래서 기억속에 잊혀졌던 부활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들은 왜 흘려 들었을까. 우선은 모든 이에게 영광스럽게 등장한 자신들의 스승이 비참히 죽으리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죽을 것을 생각지 않았는데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급작스러웠으니 부활도 갑작스러운 일, 마치 봄의 새순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에 띄이듯 그렇게 온 것입니다. 그러니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부활이니 그렇다고 입으로 말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오늘의 부활은 지난 40일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이미 우리에게 왔지만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어 기억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40일간 우리에게 어떤 묵상이 있었고, 어떤 체험들이 있었는가를 되짚어 볼 때 그리고 그것을 다시 기억해 낼 때 부활이 서서히 우리에게 의미있는 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제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우리가 성금요일에 읽었던 요한 복음의 주님 수난기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면 예수님을 제외한 이들의 말 가운데 진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겠다던 베드로의 약속도 거짓이요, ‘당신도 예수와 한 패지요라는 물음에 나는 그를 모른다는 그의 말도 거짓이요, 예수님을 범죄자라고 고발하던 사람들의 말이나,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라고 외치던 병사들의 조롱, 바라빠를 놓아주라는 군중의 외침,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은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는 자들의 겁박, 우리 임금은 로마의 황제뿐이라는 수석사제들의 위선,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더니 유다인들의 등살에 못 이겨 사형을 선고하는 빌라도의 비겁함. 온통 거짓투성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인간들의 속생각이 마치 장마 때 쓸려 내려오는 각종 쓰레기들처럼 사방을 가득 메웁니다. 그 안에서 오직 진실한 것은 나에게서 무슨 잘못을 찾아냈는가라는 예수님의 말씀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진리가 사라진 세상,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각 나라들의 위선적인 환경정책이나 고객을 최우선으로 모시겠다는 광고들의 거짓 선전. 세상 모든 아버지를 응원하겠다는 장례업체의 모순, 억지 웃음을 지어야 하는 직원들의 응대. 오늘 주교님의 메시지에서 나왔던 10년 전 416일의 세월호 참사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아무런 대책도 예방도 없이 아이들을 두 번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 그리고 2년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 또 다시 반복되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의 거짓된 변명으로 여전히 희생되는 젊은이들과 죽음보다 가혹한 가족들의 슬픔. 이러한 거짓스런 세상에서 대답을 멈춘 예수님의 정직과 진실은 어디에서 되 살아 나야 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런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봄이 오듯 그렇게 무심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불의가 판을 치는 인간들의 거짓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안의 진리를 겸손하고 묵묵하게 지켜간 사람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랑의 계명을 기억하고 희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기억해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내 자신이 진실되지 못하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양심의 가책을 지켜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이 왔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왔습니다. 하지만 봄이 꽃을 타고 우리에게 날아오듯, 부활도 진리와 희망을 지켜내는, 용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바로 여러분들에게 어느 날 선물처럼 온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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