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2024. 4. 14. 16:05말씀묵상/강론

육체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관들의 총합은 아닙니다. 육체는 한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릇입니다. 제 왼쪽 팔뚝 안쪽에는 붉은 색 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그 점을 보면서, 아이구 우리 아들 나중에 잃어버려도 이 점만 보면 찾을 수 있겠네. 그런데 말이 씨가 됐는지 예닐곱 살이었을 때 영등포 시장에서 정말로 어머니를 잃어 버렸고 시장 안내방송에서 왼쪽 팔뚝에 붉은 점이 있는 어린아이의 부모님을 찾는다는 방송을 통해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 어머니의 목소리며 시장에서 헤맸던 일, 다시 상봉하여 울음을 터뜨린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점이 눈에 띄는데 있었으니 다행이지 엉덩이나 뭐 그런데 있었으면 참 곤란했겠다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몸이 정말로 부활했음을 매우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유령이 아니다. 자 내 손과 발을 보고 그 상처들을 만져 보아라하시기도 하고 더 나아가 먹을 것을 달라시더니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뚝딱 해치우십니다.

 

예수님의 육체 역시 그분의 역사를 그 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당신의 탄생에서부터 어렸을 적 입었을 작은 상처들, 목수일을 도우면서 생겼을 손 마디의 굳은 살들, 병자들을 치유했던 기적의 손이며, 이스라엘의 곳곳을 누볐을 발바닥.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들이 떠난 뒤 겪었던 수난과 죽음의 상처와 못자국들, 이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이 부활했다는 사실은 그 몸이 담고 있던 모든 기억과 역사들이 부활했고 구원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활한다면 지금의 몸을 가지고 부활하길 원하시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반대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이 나중에 부활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길 원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이상하게도 우리는 내 자신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길 바라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 모습을 지니길 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모습 안에 담긴, 그 육체성 안에 담긴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그대로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육체와 기억은 이렇게 친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사랑입니다.

 

예수님 육체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또한 그분이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몸에 있는 상처는 부활이전 제자들의 배신과 스승 예수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상처 입었던 육신의 부활에는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곧바로 알아보지 못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여러 곳에 나타난 부활사화에서 제자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보다 완전한 형태로 변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육신의 모습 안에 담긴 기억들로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그분과 나누었던 마지막 만찬이라는 기억을 통해 그분을 알아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리아야하는 사랑어린 음성, 그 기억을 통해 그분을 알아봅니다. 오래된 친구의 얼굴에는 새로움도 있지만 과거의 모습도 그 안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다시 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의 육신은 그분과 맺었던 사랑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채 거기에 담긴 상처나 슬픔, 아픔등은 또 다른 형태, 더 아름다운 형태로 승화되어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고 구원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한 육신의 재생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전 역사와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기억이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손과 발에 있는 상처는 더 이상 죽음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용서와 구원의 징표로 승화됩니다.

 

우리의 부활도 예수님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사도 신경에서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고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하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도 우리 모두가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여 부활하길 바라십니다. 그러니 지금의 내 처지나 상황을 지워버려야 하는 슬픔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내 육신안에 담긴 나의 역사가 그분이 우리를 알아 볼 수 있는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 말미에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를 위한 회개란 내자신에 대한 화해에서 시작됩니다. 내 자신의 육신과 거기에 긷든 역사는 나에게는 불만일 수 있어도 하느님께는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듯, 하느님은 내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삶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부활했다는 오늘의 복음은 결국, 우리 육신에 새겨지고 있는 나의 하루하루 역사가 하느님 안에서 소중한 기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나의 하루는 그냥 소모되고 지워버리고 싶은 슬픈 일상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하느님이 기억하고 싶은만큼 소중한 하루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 부활하길 바라시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부활을 묵상할 때면 떠오르는 드라마의 대사가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 대사를 읽으면서 오늘의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나의 인생은 불행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버지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아들이이었을,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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