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1. 08:34ㆍ말씀묵상/강론
얼마 전 우리 본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몸신학 독서 모임에서 김혜숙 막시마 선교사님을 모시고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던 중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젊었을 때, 강남의 모 본당에서 가정 상담센터를 하셨답니다. 처음엔, 가정 문제는 주로 가난한 동네에서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부모님의 결손이나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서로를 돌볼 수 없는 곳에서 가정문제가 생기는 문제일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강남에서의 가정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 가정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세속적인 성공을 최우선 목표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 보세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매우 이기적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남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뒤처지니까요. ‘탑스쿼드’ 단편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인류가 영생을 얻는 기술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지구의 면적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포화상태, 결국 아이를 낳는 것이 금지가 됩니다. 경찰들은 아이들을 발견하는 즉시 저세상으로 보냅니다. 그러다 한 경찰관이 아이를 낳은 어떤 어머니를 만납니다. 마음의 동요가 일고, 그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왜 당신은 아이를 낳았습니까?” 그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저는 218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자신한테만 몰입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았습니다”(팝스쿼드)
세상에 대한 두려움, 인간적 욕망은 우리를 오직 ‘자신에게 몰입하도록’ 종용합니다. 상대방으로 건너갈 수 없는, 사랑할 수 없는 나눌 수 없는 외로운 자아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들은 세상에서의 생존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더 크게 두려워 할 것은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참된 ‘삶’에 대한 상실입니다. 삶의 뿌리와 근원, 돌아가야 할 곳,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입니다.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사랑하는 내 가족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다면 돈은 뭣에 쓸 것이며, 성공은 또 무슨 의미가 있으며 명예는 또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성공을 해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존재는 가족입니다.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하는 구심점은 결코 세속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세속의 굴레에 매여 세상의 방식으로 가족을 다시 세울 수는 없습니다. 세속의 가치는 계속해서 우리를 외로움으로, 고립으로 내 몰기 때문입니다. 세상 걱정이 우리 가정의 주된 대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신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포기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교우분들은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신앙을 갖습니다.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신앙을 가질수도 있다면 신앙에 속해 있으면서 세속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신앙을 살 때, 신앙은 세상살이에 종속됩니다. 나의 세상 살이를 위해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에 속해 있으면서 세상을 살면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의 장이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입니다. 신앙으로 세상에 살 때 우리는 삶의 중심이 '나 자신에 대한 몰입'에서 '너'에 대한, 다른 이를 위한 사랑으로 변합니다. 이웃사랑, 두 번째 계명입니다. 이러한 신앙과 삶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살이를 더 풍요롭게 하고 뿌리가 있게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가난은 물질의 부족에서 오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올 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12살에 성전에 홀로 남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사흘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만납니다. 그런 부모에게 예수님은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줄 모르셨습니까?”가 아니라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입니다. 돌아가야 할 곳,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시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예수님도 12살의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성전에 머무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용기내어 성전에 머물렀고 요셉과 성모님을 기다렸습니다. 가족이 무엇을 중심으로 모여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이어서 전해줍니다. 예수님은 성모님과 요셉과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두 분께 순종하며 살았으며 날마다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집에 있어야 하므로 평생 그 집에서 지내신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시고는 다시 집으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요셉과 성모님의 가정이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이전 처음으로 내려주신 복음이요 가르침입니다.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십시오. 자녀들과 가족을 신앙으로 초대하십시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정안에서의 자녀들은 자기에게만 몰입하지 않고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알며, 나눌 줄 알고, 인간다울 줄 알며, 감사할 줄 압니다. 그 안에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아이들을 경쟁에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 씨앗이라도 매일 보내주십시오. 함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무엇을 중심으로 세워져야 할지, 우리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도록 가르치십시오. 그러기 위해 내 자신이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마음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교우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 드립니다. 우리교회는 매일 밤 9시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한반도 평화와 가정회복을 위해 함께 주모경을 바칠 것을 제안합니다. 다른 기도를 더 바쳐도 좋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부모님과 자녀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매일 밤 9시 알람을 맞춰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우리 가정이 세상의 두려움 앞에서도 용기를 내어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이 미사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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