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대축일 낮미사

2024. 12. 26. 10:41말씀묵상/강론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15분의 예비입교자분들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입니다. 10개월의 교리와 만남, 피정을 통해 하느님을 마음에 모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4주동안 예수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준비한 것처럼 이 교우분들도 열달동안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우리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축하드리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성탄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일입니다. 예전에 송도에 있는 인천가톨릭대학교의 미술학과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몇 년간 했습니다. 가톨릭학교이다보니 종교적인 내용들, 철학적인 내용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들어야 하니 듣는 수업이었습니다. 교탁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빈자리가 형성됩니다. 최대한 교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를 씁니다. 관심없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신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신학생들의 수업태도는 우주 최강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로써 무언가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가 가르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전달해야 하는 것은 말 너머에 있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저자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는 존재이지 빛은 아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참 빛이다. 요한은 그 빛을 가리킬 뿐, 그래서 소리로써 그분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과 행동과 존재 자체가 바로 하느님 진리의 육화입니다. 그분은 아무말 하지 않고 있어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분입니다. 인간이 찾아야 할 참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담긴 참 존재입니다. 성탄이란, 이렇게 말씀이 소리로 전달되는 것을 넘어 사람이 되신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들었던 말씀을 소리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위와 실천을 통해 그 말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내 삶안에서 의미를 지니고 힘을 지닐 때 우리에게 현재적 성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15분의 예비입교자들께서 이제 정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십니다. 말씀과 성체를 받아 먹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성탄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따라 살았습니다. 참 기쁨을 얻으려 했지만 늘 불안했고 불만족 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선 자리가 다르면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어제와 그대로이지만 여러분들의 선 자리가 달라짐으로써 세상이 다르게 보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 묻는 것.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참 인간답게 나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하느님 안에서 정직해 지는 것. 인생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인생을 비추는 것. 이제 새로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새로운 삶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은 여기 계신 교우분들 모두에게 이미 주어졌던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요한 1,12-13)

 

이제 여러분들은 교회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가족은 인간적 혈통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며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된 참 가족입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세례를 받는 모든 분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예수님 뿐 아니라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들이 태어난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 뿐 아니라 새로운 자녀들이 탄생하였다는 점에서도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의 탄생을 기억하는 생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그리고 신앙인들의 탄생,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날 예수님께 감사하고, 새로 영세 받는 이들을 축하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초대 받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나의 삶 안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수 있기를 우리의 매일이 성탄이 될 수 있기를 이 미사중에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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