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6. 10:39ㆍ말씀묵상/강론
2024년 성탄 메시지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세주 탄생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유다의 땅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서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그분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빛을 알아본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빛을 바라본 이들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쁨과 행복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 탄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알려주는 큰 사건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시고자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이자, 강생의 신비입니다. 사랑 그 자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신비를 잘 서술하고 있는 성경 말씀은 요한의 첫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서간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보내셨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살게 해 주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1요한 4,9 참조).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이 사랑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스로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속죄 제물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성탄입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은 성탄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성탄의 분위기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탄생은 하나의 사회적 이벤트와 같은 행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는 성탄의 참된 의미보다 형식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우리의 마음은 굳어지고 닫혀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닫힌 마음에 사랑의 의미가 놓일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설령 누군가 사랑을 말하고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자기 생각과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정당화시키려 하기도 합니다. 힘의 논리가 앞선 사회는 사랑의 의미가 상실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 자연재해로 인한 고통을 우리는 어느새 관심 밖으로 밀어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냉랭한 자신의 태도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의 책임 없는 자유는 공동의 집 지구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 사랑을 등지고, 어둠 속을 걷는 인간의 굳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 위에 서로를 향한 존중과 평화가 세워집니다. 사랑은 이익과 효율의 논리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돌처럼 굳은 우리의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입니다(에제 36,26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은 하느님 사랑이 드러난 아름다운 사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탄 밤 미사 제1독서에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라고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의 큰 빛을 느끼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 빛을 향해 걸어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빛을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이고, 성탄절을 지내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의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불신이 만연한 곳에 하느님 사랑의 큰 빛을 전해야 합니다. 절망이 만연한 곳에 희망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가 만연한 곳에 화해와 용서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합니다. 다툼과 전쟁이 휩쓸고 있는 곳에 평화를 위한 기도와 희생을 봉헌해야 합니다.
2024년 성탄을 지내며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빛으로 걸어 들어가, 그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거룩한 시간,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성탄에,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