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6. 10:35ㆍ말씀묵상/강론
오늘은 성탄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세금 징수를 위한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떠난 만삭의 성모님과 요셉, 그곳의 여관들은 이미 계산 빠른 사람들로 가득 찼고, 결국 마을 끝자락의 마굿간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십니다. 근처에는 들에서 잠을 자야 하는 목동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제일 먼저 주님 탄생의 소식을 천사가 전합니다.
성경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여관방을 잡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던 요셉의 분주함과 출산을 알리는 성모님 산고, 마을의 중심에서 밀리고 밀려 마굿간까지 가는 길은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길 보다 더 험난하고 멀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분주함과 난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분명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고, 포대기의 푸근함에 싸여 천진한 눈으로 성모님과 요셉을 바라 봤을 것입니다.
울음을 멈춘, 아기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을 떠나 이 세상에 막 도착하신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 이 시간만큼은 우리 교우 분들 모두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33년을 어떻게 사실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하지만 방금 막 태어나신 아기 앞에서 앞으로 있을 고통이나 슬픔, 다양한 삶의 질곡들과 그에 따른 가르침, 의미들을 묻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은 울음을 멈추고 성모님과 요셉을 바라봅니다. 아기는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봅니다. 하느님이 걸어 놓은 모빌과도 같은 별들과 유성, 아기는 웃음을 짓습니다. 아기는 언제나 위를 바라봅니다. 내려다보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나누지 않고 천진한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아기는 땅을 보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늘을 보고 누워 있습니다. 잠시 후에는 들에서 밤을 세우는 목동들의 얼굴을 봅니다. 아기를 보는 얼굴은 언제나 밝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두 한결 같이 웃는 모습으로 아기를 봅니다. 아기가 재롱을 부리는 것 같지만, 그 전에 먼저 어른들이 재롱을 부립니다. 아기의 웃음을 보기 위한 재롱입니다. 어른들도 잠시 아기가 됩니다. 아기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따뜻합니다. 가끔씩 마굿간의 나귀들도 아기를 봅니다. 별들도 달님도 아기를 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아기는 모든 것을 올려다 보고 세상 모든 것들은 아기의 천진함으로 돌아가 아기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오늘 밤만큼은. 우리의 슬픔과 좌절과, 안타까움과 미안함.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앞으로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나 부담도 내려놓고, 지금껏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내려놓고, 그저 아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천진하게 ‘우루루 까꿍’하며 재롱을 피워봅시다. 오늘 밤만큼은 그렇게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합시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