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 08:23ㆍ말씀묵상/강론
교회는 1월 1일을 1970년부터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1968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세계평화의 날’로 정하심에 따라 이후 해마다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오늘은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 첫날이기도 합니다. 120년 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그런 해이기도 합니다. 해가 바뀐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새로운 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년 주기의 지구 공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오늘, 인류는 또 다른 출발선상에 섰음을 기념합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 듯,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용기와 희망의 말들을 나누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성모님처럼 새로운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마음에 새기겠다는 결심을 하는 날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2024년은 여러 가지로 어렵고 슬픈 일들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고, 또 많은 이들의 아픔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새해를 맞아 주님의 섭리안에서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참다운 위로가 선물로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우분들 모두 주님의 은총 안에 건강하시고, 가정에도 평화와 사랑이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들어오시면서 상본을 하나씩 받으셨을 것입니다. 선배신부님이 성탄과 축일을 축하하며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그림에 성모님께서 빨래를 널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기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성모님은 빨래를 너시면서 아기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일상 생활을 떠나지 않으시면서도 예수님을 틈틈이 바라보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당이나, 조배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성모님처럼 틈틈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 기록했을까? 아시는 것처럼 복음은 다양한 전승들을 편집한 것, 예수님 사후에 씌여진 것들입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토대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 기억 가운데 분명 성모님의 기억도 포함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잉태나, 출산,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의 이야기들은 성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의 대부분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곰곰이 되새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이라고 해서 모든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곧바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것을 마음에 새긴 것, 성모님의 특별한 지점이고 우리 신앙이 배워야 할 지점입니다.
우선 예수님의 잉태를 생각해 봅시다.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 아이를 가진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성모님,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성모님은 천사의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입니다. 이 때의 일이 지닌 의미를 언제 깨닫게 되었을까. 아이가 들어서고 배가 불러오면서 요셉성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것입니다. 요셉을 믿긴 했지만 입덧이 시작되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울 무렵, 여전히 천사의 말을 마음에 새기긴 했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을 무렵, 친척 언니인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비로소 자신의 잉태 소식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엘리사벳의 위로와 찬미를 통해, 6개월 전의 이야기가 의미를 알아채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6개월이 흘러 만삭이 되던 즈음.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하지만 베들레헴에는 아기를 출산할 병원도, 숙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굿간에서 해산합니다. 요셉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성모님은 이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비참할 수 있는 처지를 인내합니다. 그러자 목자들이 나타나 아기에 관한 말을 들려줍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그들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그리고 목자들의 말은 여드레 뒤, 성전에서 예수님을 봉헌하면서 다시 한번 시메온의 찬가를 통해 확인됩니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도, 그리고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혼내거나 화를 내지 않고 마음에 새깁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성모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내 뜻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슬프고 아픈 상황 앞에서 성모님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멈춥니다. 분노를 멈추고, 원망을 멈춥니다. 그리고 이 일들 안에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새깁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의 멈춤, 하느님이 약속한 희망에 대한 믿음, 기억. 이것이 하느님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자세입니다. 멈춤과 희망과 믿음, 그리고 기억은 예수님이 태어나고 성장하듯 우리의 마음과 삶 안에서 신앙을 성장케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잉태는 예수님 탄생 전에 일어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키워내고 동반하는 가운데 지속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속적인 잉태와 탄생, 성탄인 것입니다.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의 첫날을 교회가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로 보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을것입니다. 새로운 한해, 을사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도 나에게 주어진 일들 앞에서 잠시 나의 판단을 내려 놓고, 그 안에 있을 하느님의 뜻을 희망하고 믿으며 그것을 마음에 새겨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키워내고 살아낼 수 있는 은총을 이 미사중에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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