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나해 16주일

2024. 7. 25. 07:58말씀묵상/강론

오늘 복음을 한번 다시 되새겨 봅시다. 오늘 복음 이전의 마르코 복음은 제자들의 파견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악령을 쫓아내고 하늘나라를 선포하라는 소명을 부여 받습니다. 지난 주 복음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리고 파견되어 소명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은 예수님께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고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들을 흐뭇하게 들으십니다. 오랜 선교여행에 지친 제자들이 안쓰러웠던 예수님은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며 제자들을 배려하십니다. 고생한 그들이 측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외딴 곳으로 떠나는 제자들의 길을 추적해서 집요하게 따라옵니다. 제자들이 쉴 틈을 주질 않습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은 그런 군중들도 가엾어 졌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오랜 업무로 지친 제자들도 안쓰럽고, 쉴 틈을 주지 않고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라오는 군중들도 안쓰러웠던 예수님.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들 같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 오늘 복음 내용의 전부입니다.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항상 평범함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부모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쁜 자식만 자식이 아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습니다. 첫째가 고생하면 첫째가 안쓰럽고 막내가 고생하면 막내가 안쓰럽고. 그런데 자식들은 나는 사랑하지 않고 동생만 사랑한다, 형만 사랑한다며 투정을 부립니다. 그래서 때론 서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갈라선 자식들을 다 사랑합니다.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니 이런 저런 이유로 안쓰럽고 미안한 것입니다. 측은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사실 예수님의 인류 구원은 바로 이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우리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분이라는 데 생각이 집중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제자들도 측은히 여기고 군중들도 측은히 여기는 그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마음이 확장되어 당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게 만들었던 것 뿐입니다. 마더 데레사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처럼 말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놀라운 희생정신에 대하여 어느 기자가 그랬다죠. 수녀님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돌보실 수 있었냐고. 그러자 수녀님은 의아하다는 듯 대답하십니다. “저는 수 많은 사람을 돌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내 앞에 있는 그 가련한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큰 업적만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그분은 전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위대한 분이라고 부르길 좋아합니다. 또 마더 데레사는 수만명의 사람을 돌보았다는 수만명이라는 숫자에 마음을 둡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마더 데레사의 공통점은 내 눈 앞의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그들이 안타깝고, 군중을 보면 그들도 측은한 그 마음. 이 마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요 또 구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예수님에게만, 혹은 마더 데레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도 이 이야기의 연장일 뿐입니다. 바빌론 유배의 이스라엘이 측은했던 하느님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인물이 나와 어린 양떼와 같은 이스라엘을 돌볼 것이라는 것이 제 1독서요, 적개심을 가지고 다툰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화해시키셨다는 말씀이 제 2독서의 내용입니다. 어느 한 사람 빼 놓지 않고, 나누지 않고, 편애 하지 않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토로한 것이 바로 오늘 독서의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류구원이라는 대단한 사건이 아닌 그 안에 흐르고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측은지심. 그것이 인류 구원의 핵심인 것입니다.

 

맹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다. 공부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측은지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존양과 확충이라 부릅니다. 7,8월의 장마는 모든 하천을 범람하게 할 정도로 위협적이고 엄청나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몇일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말라 버립니다. 하지만 산골에서 흐르는 샘물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흐르고 흘러,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운 뒤에 또 강으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의 공부나 수양도 바로 샘물과도 같은 작은 원천의 마음, 바로 측은지심을 지키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마음을 잘 지키고 확충하면 사해를 보존하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그것을 보존하지 않으면 부모님조차 섬길 수 없는 그런 메마른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과 내가 다른 것 한 가지는 바로 이 본래 마음을 잘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아주 작지만 위대한 인간의 본성, 바로 이 측은한 마음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복음의 군중처럼 그분을 체험하며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내 주셔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성체와 교회를 통해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도 있는 그 마음. 그 마음을 간직하여 편가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토라지지 않을 때, 그리고 오히려 상대방을 측은히 여기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 그 순간 예수님의 마음과 닮아 있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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