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 11:36ㆍ말씀묵상/강론
예전에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한 가족이 들어와 저희 옆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딸로 보이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서로 핸드폰을 꺼내 쳐다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만나고 있는걸까? 물론 그들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지 않으니 다투거나 얼굴을 붉힐 일은 없겠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도 일어나지 않지만 기쁨이나 친교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회당장의 병든 딸을 고쳐주러 가시던 예수님. 거기서 열 두해동안 하혈을 하는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오랫동안 가진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여인이 만난 의사들은 단지 병을 고쳐 주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며 그녀에게는 수단입니다. 교감을 나눌 것도 마음의 접촉을 이룰 것도 없습니다. 12년간의 이런 일방적인 만남은 아무런 소득 없이 종결됩니다. 오히려 그녀의 상태는 더 나빠졌을 뿐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녀의 간절함과 믿음을 봅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고백의 내용입니다. 그녀는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낫겠지’라 말하지 않고 ‘구원 받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병이 낫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12년간의 투병을 통해 자신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병의 치유가 아니라 마음의 치유,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시간은 그녀의 소망을 정화하게 하였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가 직감한 것처럼 구원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단순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거나 대단한 선행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의 옷에 손을 대는 것’뿐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행위이지만 그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온 생애가 구원 받으리라 믿은 것입니다. 오직 필요한 것 한가지, 예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교감을 이루고 절대적인 구원을 체험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당에 무턱대고 앉아 있다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가. 정말 그렇다면 구원은 매우 단순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은 그 여인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밀쳐댔으니 예수님의 옷자락 뿐 아니라 어깨며 팔을 만진 사람들이 부지기 수였을 것입니다. 자신에게서 기적의 힘이 뻗어나간 것을 아신 예수님이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었지만 그들의 행위는 무의미한 접촉에 불과했습니다. 만남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구경거리이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군중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분과 같은 시공간 안에 있을 뿐 만남을 원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고 있는가. 혹시 군중들처럼 내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어달라는 일방적인 요청으로 예수님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 그분을 원망하고 멀리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미사에 참례하면서도 성당 구석 어디선가 그저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매주 구원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군중의 자리인가 아니면 여인의 위치인가.
그 여인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을 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매주, 혹은 매일 살아계신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신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메마른 것 같고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나에게 아무런 일을 해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참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으면서도, 또 쉽게 예수님을 만졌으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여인은 12년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충만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제 그 여인은 단순한 익명의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딸’로서 불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우리는 오늘도 성체를 받아 모실 것입니다. 옷자락을 만지는 것보다 더 놀랍고 엄청난 만남의 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여인과 같은 고백을 하며 영성체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저분의 몸을 받아 모시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들과 딸들아. 너희의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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