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6. 15:49ㆍ말씀묵상/강론
엽등(躐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등급을 뛰어 넘으려는 마음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적 상황이나 능력을 인정하여 차분하고 착실하게 노력하지 않고 손쉽게 단계를 뛰어넘으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입니다.
나는 엽등하려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우리 신앙도 자주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선 현실과 동떨어진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노력이나 희생 없이 자신의 상황이 갑자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물론 때에 따라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 기적의 주체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그런 기도를 드렸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이런 태도도 엽등의 한 형태입니다. 때와 상황에 맞는 자신의 노력을 등안시 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형태의 엽등도 있습니다.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라는 마음이 듭니다. 물론 가끔은 과도한 충고나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을 스스로 과대 평가한 것으로 인해 못마땅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실의 나보다 상향조정하여 자신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엽등입니다. 그러니 너는 나를 잘 모른다며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를 모르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여긴 한 형제님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요즘 아내와의 대화가 불편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질문에 아내가 답을 하지 않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신문에서 요즘 중년 중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본 것입니다. ‘아내도 혹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게 아닐까?’싶어서 시험을 해 봤습니다. 먼저 방 한쪽 구석에서 조그만 소리로 아내에게 ‘내말 들려요?’라고 물었습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더 가까이 가서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고, 더 가까이 가서 불러도 마찬가집니다. 슬픈 마음에 아내 바로 뒤에 가서 아내를 부르자 아내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잘 들려요. 벌써 몇 번을 얘기하게 해요?’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타인의 진지한 충고를 진지하게 여겨야 합니다.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타인에게 비춰진 내 모습도 나의 수준이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타인의 평가에만 집중하여 자신을 잃어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타인들의 지적도 나의 한 모습일 수 있으므로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엽등하지 않는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듣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려 놓았는데 어찌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 채 줄기가 나고 이삭이 나오고 낱알이 영급니다. 또 하느님 나라는 작은 겨자씨와 같다고도 비유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가지들이 자라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복음 말씀을 들을 때면 인간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신비에만 머물곤 합니다. 작았던 겨자씨가 어떠한 나무보다 커진다는 역전의 신비에도 귀가 솔깃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핵심을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신비에만 제한시켜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나는 나를 개선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해주실 것이라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나 복음에서 표현되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의 의미는 ‘우리들이 노력한 것에 비해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느님 은총’입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렸지만 그 씨는 각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처음에는 줄기가 그 다음에는 이삭이 그리고 낟알이 영급니다. 낟알을 거두기 위한 모든 단계가 생략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 단계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생략되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 역시 땅에 뿌려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절한 습도와 온도, 햇빛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자연은 순차적으로 그 신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순서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지만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현명한 여인들처럼 그 날을 기다리며 애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들에 합당한 응답을 드리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에서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할 또 다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나의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여기거나, 자신에 대한 사회나 이웃의 평가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매 순간, 내가 직면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반성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되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엽등하려 든 적은 없는지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비하면 작은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응답 없이 주어진 선물은 기쁘지도 않을뿐더러 그만큼 쉽게 잊혀집니다.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주신 은총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엽등하지 않는 우리의 착실한 노력을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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