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나해 12주일

2024. 6. 23. 19:14말씀묵상/강론

공자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며칠을 굶주려 일어날 기력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자는 방 한쪽에서 조용히 금을 켜고 있고 이에 화가 난 자로가 다가와 이야기합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당시 공자의 일행은 주유열국, 그러니까 나라의 임금들에게 등용되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이상을 유세하던 때. 소문난 스승들은 그 나라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공자를 믿고 따르던 제자단은 오랫동안 굶주림에 지친 것입니다. 이런 곤궁한 상황을 실패라 여긴 자로. 그래서 그는 군자도 곤궁할 때가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자로의 노여운 질문에 공자는 조용하고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군자는 원래 곤궁한 법이라네. 그러나 소인은 곤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인생에서 우리가 계획하고 예측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공자는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실패와 곤궁함이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세상사란 원래 희노애락이 번갈아 가며 일어나는 것이고 성공과 실패 역시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 앞에 벌어진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늘의 명을 신뢰했던 공자는 그 상황을 실패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것 역시도 인생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도 하늘의 명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그의 제자들은 분노와 슬픔으로 평정심을 잃습니다. 좋고 아름다운 것만을 성공이라 여긴 까닭입니다. 같은 상황에 대한 너무나도 다른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인생을 결정합니다. 공자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고 제자들의 시선은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좋은 것이며 실패는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발생하는 원인은 나에게 주어진 삶이 오직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제 2독서에서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을 촉구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속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더 나은 사람, 더 성숙하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망은 삶에 대한 시선이 오로지 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때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훌륭한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기도하고 봉사하며 희생하지만 여전히 공허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성공의 지평에 멈춰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의 삶이 나를 위한 것에 갇혀 있습니다. 자기에게 갇혀 있으니 자신의 고통과 슬픔만이 크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바오로는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그분 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에게만 집중된 시선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한 사랑의 다그침입니다. 성령의 인도이며 하느님의 명입니다. 이 사랑의 다그침은 나의 시선을 나에게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사랑의 다그침으로 살았던 예수님의 삶 전체는 자신에게 갇혀 있지 않았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남긴 유일한 계명을 기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나의 성공과 나의 기쁨이 나의 계명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는 것이 나의 계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집중되었던 그 시선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돌리라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호수 저 쪽으로 건너가자고 초대하십니다. 새로운 삶을 꿈꾸던 제자들은 그분을 따라 배에 오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길 원했고 호수 반대편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겠노라고 결심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신앙의 삶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삶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그러니 자신안의 폭풍에 빠져 버립니다.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다 보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 삶의 굴곡에 스스로를 가둬 버립니다. 폭풍이 불면 괴롭고, 하느님 마저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잔잔해 지기 시작하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도 여전히 평온한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면서 부터입니다. 그분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 상황에서도 베개를 베고 곤히 주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 그들은 말합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걱정하지 않고 그렇게도 평온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고 폭풍우에게 명령합니다. 폭풍우란 내 삶이 오직 에게 집중될 때 일어나는 마음의 소용돌이이며, 혼란이며, 괴로움입니다. 그러니 잠잠해져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혼란에 빠진 나에 대한 명령입니다. 네 안에서 일어나는 혼돈의 폭풍우에서 눈을 떼라! 너의 희노애락에만 집중하여 벌어진 그 슬픔에서 빠져나와 하느님과 이웃을 바라보라! 왜 여전히 겁을 내느냐,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이제 제자들은 자신 안에 머물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립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선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시선이 나에게만 머문다면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과 시련들은 그를 흐트러지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로 마음을 돌릴 때 우리의 슬픔과 고통은 그 분이 겪은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그분의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삶의 파도와 고난 가운데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한 예수님처럼, 곤궁한 가운데에서도 수금을 타던 공자처럼, 내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난 슬픔과 아픔에 매이지 말고 하늘과 이웃에게 눈을 돌렸으면 합니다. 나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 안의 폭풍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 사람으로 초대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다그침에 내 마음을 맡기는 한 주간 되시길 미사중에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묵상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나해 14주일  (0) 2024.07.09
연중 나해 13주일  (0) 2024.07.02
연중 나해 11주일  (0) 2024.06.16
연중 나해 10주일  (0) 2024.06.11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0) 202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