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대축일

2024. 5. 30. 13:31말씀묵상/강론

우리는 지난 주 성령강림대축일을 보내고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강론은 좀 딱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교리는 믿을 교리이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신학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을교리란 그것에 대해 인간의 설명으로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신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내용적으로는 하느님께서는 한분 뿐 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삼위일체 신학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 아타나시오 성인은 오늘 성무일도 독서 기도에 나온 편지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시는 한분이신 하느님 이십니다".

여기서 '만물 위에 계시다'는 말은 하느님은 제 1원리이고 기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만물을 꿰뚫어 계시다'는 말은 하느님께서는 말씀이신 성자를 통해 존재하신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만물 안에 계시다'는 말은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존재하신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저는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삼위일체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삼위일체의 교리는 하느님은 반드시 육체를 지닌 현실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떠난 신앙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과 하느님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믿음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52일이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이었는데 그 때 미사 중에 하느님의 육신성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타나시오 주교님은 아리우스주의라는 이단과 싸워 삼위일체 교리를 주장한 분이십니다. ‘아리우스주의란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과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시므로 육체성을 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육신을 지닌 예수님은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긴 해도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이죠. 이는 하느님을 구체적 인간 현실과 분리시키는 사유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신비성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교님은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발현만 하시기를 원하셨더라면 인간이 지닌 육신보다 더 고귀한 육신을 취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실제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육신을 지니신 하느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저 멀리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육신을 취하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을 수난케 하고 다시 부활케 하여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고 싶은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과 구체적인 그분의 삶, 기적, 그리고 부활 역시 하느님의 상징적인 발현이 아니라 육체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닌 하느님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일상 안에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일상을 내팽개치게 하는 신앙들이 있습니다. 가정을 버리게 하고, 구체적 삶의 고뇌나 아픔들을 멀리하게 하는 신앙은 우리가 믿는 신앙은 아니라는 것. 바로 이단이라는 말입니다. 신비적인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안에 직접 함께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히 하느님과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하는 교조주의적 정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육신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한다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관여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의 육신 탄생과 부활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죠.

 

두 번째로 삼위일체 교리에 나타난 알파(Α)요 오메가(Ω)이신 하느님입니다. 다시 말해 시작과 마침에 이르도록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사건이 과거의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창조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 다시 말해 세상 끝 날에 대한 기다림으로 마칩니다. 세상 끝 날에 대한 기다림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도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제 2독서는 말합니다.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눈으로 마주 할 수 없는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예수님의 육체는 이미 하늘로 오르셔서 계시지 않지만 지난 성령강림대축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 한분이신 성령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주가 크고 넓고 무한하여 하느님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하느님이신 예수님 역시 역사 안에서 육신의 모습이 사라지셔서 우리와 직접적으로 통교할 수 없지만,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찬미하는 그 순간, 교회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미사를 거행할 때, 우리는 성령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 부활하신 예수님과 본질적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이 바로 성령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구체적 현실 안에 위대한 창조주의 은총을 드러낸다는 '예수 하느님'에 대한 믿음

성령을 통해 지금 이순간,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믿는 이들, 즉 교회안에서 하느님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성령 하느님'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이 바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의 구체적 삶과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감사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단순한 평화나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초월적 존재를 이 자리에서 실현하고 있음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알렐루야의 묵시록 말씀을 읽으며 강론을 끝맺을까 합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은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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