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대축일

2024. 5. 22. 14:34말씀묵상/강론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어제 성모의 밤을 지내면서 성령으로 마리아께 내려오시어 사람이 되신 신비에 대해 기억하고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늘 성령의 은사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습니까?

오늘 우리가 들은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을 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을 돌이켜 보면 부족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싶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싶고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죠. 그래서 이미 받은 성령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처음 하시는 말씀이 용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용서로 이끕니다. 나의 잘못을 모른척하고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일어나도록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지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여 같이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내린 성령을 알아챌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성령에 충실히 응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성령은 우리에게 7가지 은사를 내려주십니다. 그것은 크게 인간의 지성과 관련된 것이고 또 하나는 의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성령은 나도 모르게 불타는 열정과 용기를 주는 은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체험들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감탄의 시간보다 더 긴,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들. 때론 무미건조한 삶 안에서 성령안에 산다는 것은 나의 지성과 의지를 동반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인간의 지성과 관련된 은사는 지혜(하느님의 사랑을 세속보다 귀하게 여기는 지혜), 통달(구원의 진리를 인간의 지력 한계 내에서라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 의견(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돕는 것), 지식(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하게 하는 은사),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연관된 용기(신앙 생활에 수반되는 장애를 극복하는 힘을 주는 것), 효경(하느님에 대한 자녀적 사랑을 증진시키는 것), 경외심(하느님을 두려워 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통해 얻게 되는 9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아이구 너무 많네요 기억하기 어려워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9가지 열매는 3가지 관점으로 구분됩니다. 우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이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는, 인내, 호의, 선의이고 나 자신과 관계에서 맺는 것은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내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사랑할 수 있고, 역경속에서도 기쁠 수 있으며, 괴로움 속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의 부족함을 인내해주고, 호의를 베풀고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은 늘 성실한 마음과 실천을 다짐하고, 따뜻한 온유의 마음, 욕망을 거두고 절제하는 마음인 것이죠. 9가지 열매와 반대되는 것은 갈라디아서 519절 이하에 나옵니다.

육의 행실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적개심, 마술,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라고 갈라디아서(5,19-21)는 말합니다.

 

마음이 많이 뜨끔해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어요. 육욕보다 더 나쁜,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저버리는 가장 큰 유혹, 바로 좌절입니다. 이게 왜 가장 나쁜 이유는 스스로 나를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하느님이 하는 것인데 내가 하느님 자리를 넘보는 그야말로 독성죄인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가라지를 자처하여 나를 지옥불로 던져 버립니다. 자포자기 하는 거죠. 자포자기 하는 사람은 갈라디아서에 나온 육욕에 종속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단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노력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 희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지 완성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2년도 성령강림 대축일에 교황님은 다음과 같은 강론을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활동적인 기억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불타오르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잘못된 것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실패와 결점들을 상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지요. ‘그봐, 또 실패했고 또 좌절했어. 너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거야, 넌 못해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것을 말씀하십니다. ‘넘어졌니? 너는 하느님의 자녀란다. 너는 고유하고, 선택받은, 귀중하고 사랑받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란다. 네가 너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너를 신뢰하신단다’. 이것이 성령의 기억이며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성령의 열매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보고, 세속의 유혹을 이기고 그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우리를 늘 일으켜 세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용기 내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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