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4. 10:32ㆍ말씀묵상/강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놈에게 꼭 붙어 있는 놈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날아다니니 나는 놈 보다 한 수 위인 것이죠. 그런데 꼭 붙어 있는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놈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건 내가 할 테니 너희는 나에게 꼭 붙어 있어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꼭 붙어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입니다. 성경학자들은 13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내용부터 요한복음 17장까지를 고별담화라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바로 유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신의 온 마음과 사랑을 다하여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오늘 들은 복음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핵심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 그 힌트가 7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는 지난 2월 5일부터 말씀씨앗을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3달가량 되었는데요. 처음에 의도는 그랬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나오시는 분들이라도 매일 미사에 참여 할 수 없으니 말씀 한 구절 마음에 담고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이유가 첫 번째이고, 코로나 이후 성당에 잘 나오지 않는, 소위 쉬는 교우분들에게 말씀의 씨앗을 보내드리면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 다시 하느님 앞에 나오는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는게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씨앗을 여러분들에게 보내 드리면서 오히려 제 자신한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강론준비와 말씀씨앗 준비를 하다보면 하루종일 말씀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날 독서와 복음, 그 외의 화답송, 알렐루야에 나오는 말씀들을 꼼꼼이 읽고 그 가운데 함께 나눌 말씀을 선별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말씀에 대한 묵상과 생각으로 이어지죠. 일전에 어떤 교우분께서 신부님 말씀 씨앗 쓰시느라 힘드시죠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분께, 힘들기는 한데 말씀씨앗 쓰고 나서부터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안에 머물다 보면 나쁜 생각, 미운생각, 나에 대한 연민, 자신감의 상실, 기도를 게을리 하려는 마음등이 내 마음 안에 있는 말씀으로 극복됩니다. 이전에 기억하고 있던 말씀들, 내가 했던 말씀씨앗의 내용들이 불쑥불쑥 생각이 나면서 다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분들도 그날의 독서나 복음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지 않는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읽으세요. 제가 3월 7일 보내드린 말씀씨앗에 이런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술을 끊고 싶었으나 번번이 실패하던 사람에게 어떤 수도승이 ‘성경’을 읽으라고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하다고 하자 수도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계속 열심히 읽으십시오. 어느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악령들이라도 그대가 읽는 것을 알아듣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것이라고 말입니다’” 악령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그리스어로 ‘악령’은 디아블로스입니다. 유명한 게임 가운데 ‘디아블로’라는 게임이 있는데 디아블로는 디아블로스의 스페인어입니다. 디아블로스의 정확한 뜻은 ‘~으로부터 떼어내어 집어 던지는 자’라고 합니다.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떼어 내어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우리를 던져 버리는 것이 바로 악마가 우리에게 하는 활동입니다. 결국 악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늘 복음말씀인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일으킵니다. 코로나 때 성당에 나오지 않았는데 삶에 오히려 여유가 있다라든가, 하느님의 사랑이나 겸손, 용서등은 사회 생활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라던가, 성당에 다니지 않아도 말씀을 묵상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 사랑하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유혹들, 그래서 하느님과 우리를 떨어뜨리려 하는 모든 것이 악마의 활동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우리를 계속해서 이으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나는 놈 위에 꼭 붙어 있는 놈이 되는 것입니다.
또 매일 듣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해서 말씀을 멀리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고도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다시 살과 피가 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밥을 먹어 목구멍으로 넘기면 나머지는 내 육체가 하느님께서 마련한 법칙에 따라 음식을 세포로, 피로, 뼈로 만들어 나를 성장케 하고 하루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듯이 우리가 말씀을 듣고 꼭꼭 새겨 넣으면 그 말씀은 스스로 활동합니다. 마치 소화기관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음식물을 소화시키듯 말씀도 그렇게 스스로 내 안에서 살아 움직여 필요할 때, 다시 말해 우리를 하느님과 떨어뜨리려는 유혹이 생길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저 역시도 그 전에 이해 못하거나 별 감흥 없던 말씀들도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서 살과 뼈로 변화되어 나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말씀을 그 자리에서 알아 듣고 이해하려는 것도 우리의 욕심이며, 하느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우리가 말씀을 받아 먹으면 하느님께서 그것으로 우리의 살과 피로 만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씀도 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어느덧 부활 5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서 부활한다는 것은 말씀으로 통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본당 교우분들 모두 말씀 안에서 머물러 그분이 우리안에 머물 수 있는 하루 하루가 되길 미사중에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