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2024. 5. 4. 10:31말씀묵상/강론

오늘은 제 61차 성소주일입니다. 성소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거룩한 부르심은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오늘 교황님께서도 성소주일 담화문을 발표하시면서 제일 첫 머리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해마다 성소 주일은 소중한 선물인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순례하는 백성의 일원인 우리가 당신 사랑의 계획에 참여하여 우리의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 종교적 이상의 이름으로라도 부과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참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하느님이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어떻게 부르고 계신지 귀기울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은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다시금 생각하고 묵상하는 그런 날인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날은 특별히 사제성소, 수도자 성소, 선교자 성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본당에서도 오늘 어린이들 청소년들, 그리고 교우분들이 버스 2대를 빌려서 봄 나들이겸 신학교를 방문합니다. 거기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우리 이태민 마르티노 학사님도 만나고 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방문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신학생들은 오늘을 청소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학교는 넓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 성소주일을 준비하면서 대청소 하고 행사가 끝나면 또 대청소를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성소주일이니 저의 성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6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는 3남매인데, 아버지 유언이 제가 나중에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6학년. 아버지 유언이니 그러겠노라고 눈물 짜면서 대답은 했는데, 내가 정말 신부가 되고 싶나? 그런 생각을 했죠. 중학생이 되면서 저는 어느새 신학교에 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버지 유언이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또 아들이 사제가 되면 얼마나 큰 영광이냐, 그러셨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고민이 생기는거예요. 인생을 의미있게, 특별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강했고, 그래서 신부가 되는 건 좋은데, 그래서 장가 안가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연예한번 못하고 평생 산다는게 싫은 거예요. 아마 그 때 성당에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어서 그랬나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 문과, 이과 선택을 해야했어요. 신학교에 들어가려면 문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참 이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수학이나 과학은 재밌어 했는데 역사 철학, 뭐 이런 인문학이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그런데 신학교를 가려면 문과를 가야했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는 정말 사제가 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아버지 유언에 떠밀려 그렇게 끌려가고 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어머니와 진지하게 상담을 하고 나는 그냥 이과를 선택하고 일반대학을 가겠노라고 결정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아쉬워하셨지만 제 인생이니 더 이상 관여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고 3이 되었을 때였어요. 저랑 동갑인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찾아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뜸 그러는거에요. 강휘야 나 신학교 갈거야. 그런데 기분이 묘하더군요. 이전부터 신학교 간다고 했던 건 난데, 신학교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선수를 뺏긴 것 같고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친구한테 나도 신학교 갈거다라고 말을 해 버린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3학년 때부터 문과 공부하고 그래서 신학교 들어갔어요. 그 친구도 저와 입학을 같이 해서 지금은 의정부 교구 목동동 주임신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친구는 내가 왜 신학교에 들어갔는지 몰라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이유로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기뻤는지 몰라요. 신학교 준비하면서 당시 유명한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고 아 내가 정말 이 선택을 잘했구나,하는 생각도 했고 신학생선배들이 부르는 임쓰신 가시관을 들으며 가슴 뛰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정말 순수한 동기와 신앙심, 용기를 지닌 동료 신학생들을 보며, 설사 내가 사제가 되지 못한다 해도 훌륭한 동료들을 통해 배운것들 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어떤 사제가 되고 싶은지, 나의 성소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지에 대한 반성들을 하게 됐습니다. 성소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또한 성소는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만남을 통해 더 성숙해 지는 것이죠. 그 이후 사제가 되어서 중국유학길을 떠났고, 허리를 다쳐 공부를 그만둘까 고민도 많았습니다만 어려운 고비마다 하느님의 인도로 지금 이 시간에 이르게 되었네요.

 

생각해봅니다. 만일 내가 사촌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신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천국의 열쇠를 읽지 않았더라면,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중국 유학을 가지 않았더라면....아마도 지금 검암동의 사랑스런 교우분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느님은 계속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당신의 계획대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착한 목자가 양들을 풀가로 데려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그분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그 목소리에 응답하느냐의 차이일 것입니다.

 

오늘 교황님께서 담화문에서도 강조하셨지만 사제, 수도 성소를 위해서는 기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은 매우 뜻밖의 것들이어서 그 소리가 하느님의 소리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학교에 학생들이 이제 50명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출산률도 낮아지고 학생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성소는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현상이 성소가 줄어드는 근본원인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일이 사라지면서 생긴 일이라고 봅니다. 기도가 적어지니 하느님 소리를 식별해 낼 영적인 눈과 귀의 능력이 퇴보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가정 안에서의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비단 사제, 수도 성소를 더 많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모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 즉 부모성소에 대한 식별도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달라 청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다양한 성소,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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