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나해 27주일

2024. 10. 6. 23:43말씀묵상/강론

이번 10월은 묵주기도의 성월입니다. 200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를 발표해서 묵주기도가 기도의 학교이며 단순하지만 심오한 기도로써 우리 신앙인들에게 친숙해져야 한다고 말씀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하여 묵주기도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묵주기도를 많이 바칩니다. 묵주기도는 로사리오라고도 부릅니다. 장미화환입니다. 초기 교회 박해시기에 원형경기장에서 신앙인들이 사자들의 먹이가 될 때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다고 합니다. 박해를 피해 숨어있던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 시신을 거두면서 그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데 모아 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치기 시작한 것이 묵주기도, 로사리오의 유래입니다. 그 이후 사막의 은수자나 수도승은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 50편이나 100, 또는 150편을 매일 외웠는데 이 때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며 기도 횟수를 세었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 수만큼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유래가 되어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알랑 드 라로슈 수사는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른 환희 고통, 영광등 세 묶음으로 신비를 나누어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급속히 퍼져서 15세기 말 경에 전통적인 15단 묵주기도가 정착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를 발표하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묵주 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의 기억과 또 그 눈길과 일치하게 됩니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교황님은 성모 마리아보다 그리스도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며, 그리스도 신비를 더 잘 이끌 수 있는 사람도 없다라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에 있으며, 그분과 온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모님입니다. 그분을 잉태하셨고, 양육하셨고, 그분의 가르침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보고 들으셨고,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누구보다 아파했으며 부활을 함께 체험하신 분. 우리가 봐야 할 모든 것을 온전히 보신 분. 제자들은 기껏해야 공생활 이후에나 예수님을 뵈었지만 성모님은 그 모태에서 예수님을 품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교황님 말씀처럼 그리스도 신비를 성모님보다 더 잘 이끌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이어서 묵주 기도 한단 한단을 성모님과 함께 건너가는 것은 성모님의 학교에서 그리스도를 읽고 그분 신비를 깨닫고 그분 복음을 배우는 것과 거의 같다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교서를 통해 우리가 아는 빛의 신비를 추가하게 됩니다.

 

묵주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결국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마다 성모님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당신 아드님의 잉태와 탄생, 구세주로서 오신 아드님의 다양한 말씀과 행적,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을 성모님과 함께 보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라고도 부릅니다. ‘관상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형상을 보다’, ‘영상을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과 관련된 복음의 이야기를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상황속으로 함께 들어가 그 사건안에서 예수님을 사랑의 눈으로, 성모님의 눈으로, 제자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은 내적 침묵과 희망, 사랑, 믿음을 동반한 바라봄입니다. 그래서 성 요한 23세 교황님은 묵주기도로 묵상과 영신 수련을 동시에 한다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성 바오로 6세 교황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리아의 공경이라는 교황님의 권고에서 관상이 없는 묵주 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아져 기도문만 반복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주기도가 단지 주문을 외우 듯 습관적으로 웅얼거리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묵주기도를 잘 바치지 않던 어떤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 순간 묵주기도를 바치는 다른 어르신들이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면 은총이 쏟아진다는 말을 듣고,  과연 그것이 무언인지  체험하기 위해 하루에 10단 이상씩 꾸준히 한달 넘게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자신안에 일어난 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마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자주 체험한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하느님이 보내 주시는 신호를 포착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하느님의 신호들. 예를 들면 설거지가 쌓여 있는 싱크대를 보면 아무 생각 없었는데, 묵주기도 바치다 보면 아 이것이 사랑의 기회다’라는 등의 일상의 신호들을 알아채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 뿐 아니라 유익한 기회도 보입니다. 생각도 안하던 새로운 도전들이 있다면 갑자기 해봐, 네가 해야 될 일이야라는 신호가 옵니다. 둘째로 묵주기도를 통해 영적인 감수성이 좋아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보내주는 신호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하루종일 깨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그런 신호들이 계속 있었겠지만 못 느끼고 있다가 묵주기도를 꾸준히 하다보면, 우연히 일어난 일인데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상이 하느님과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이번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1883년 교황 레오 13세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기는 하지만, 이번 한 달 특별히 묵주기도를 통해 세계평화와 가정성화를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특별히 107()은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현 교황님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세계주교시노드 16차 정기총회 개막미사에서 107일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로 선포하시고 전 세계가 함께 기도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전쟁과 우크라이나의 장기화된 전쟁,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내전들 속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함께 기도하자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이 미사 중에 다시 한번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떠올리고, 세계평화와 가정의 성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그런 10월 한달이 되길 저도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