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나해 28주일

2024. 10. 21. 07:31말씀묵상/강론

요즘 AI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주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동을 AI가 다 해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어떻게 진화할지 예상할 수 없을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각종 직업군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부터,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일들은 모두 AI가 하고 인간은 귀족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어렵고, 귀찮고, 위험한 일들을 피하려는 인간 본성과 스스로 개발한 과학기술을 통해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려는 욕망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인간은 점점 세상과 인간 자신의 주인임을 자처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이 땅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하느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압니다. 한 톨의 곡식과 한 알의 열매를 맺기까지 벌어지는 자연의 놀라운 신비로움.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일 한다 해도 적절한 햇빛과 때에 맞춰 내리는 비, 비옥한 토양이 없다면 어떤 결실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해 겸손해지고 창조주 하느님의 신비를 찬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고된 일들을 떠나 도시로 공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접할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점점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이시지만 이제 하느님은 인간에게 불필요한 존재, 가볍게 무시 되도 관계 없는 존재, 그분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의 주인임을 자처한 결과가 무엇인가? 세상은 점점 오염되어 가고, 그에 따라 기후의 변화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멸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면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인간들입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찬양합니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솔로몬의 지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에서 더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나를 빚어 만들고 지금도 살아 숨쉬게 하는 분. 그래서 사람의 속을 꿰찌르며 나의 속마음과 속셈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분. 우리는 그분 앞에서 모두 벌거숭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풍요와 발전, 그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류의 자화상입니다. 부자청년이 등장합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좋은 일들을 많이 했던 청년을 예수님은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지만 청년은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울상이 되어 떠나가 버립니다. 사실 그 청년은 자신의 풍요로움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한 인류자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우리의 부요함을 내려 놓고 가난함으로 돌아가는 일, 그래서 이 지구는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우리 모두는 결국 하느님 앞에서 셈을 해야 하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자가 모든 것을 버리는 일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일처럼 보입니다. 인류는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느님을 따라 나설 수 있는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워 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습니다. 이 상황에서 참된 구원이 가능한가? 그런데 이 질문은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던진 질문이며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이 극적인 일이 가능해 보이는가? 자신의 부요함을 나누고 내려놓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하에서 구원은 가능한가? 제자들의 질문은 2000년이 지난 우리 인류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 신앙인어야 합니다. 인류가 자신의 풍요로움 내려놓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구원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느님께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그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 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구원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하느님의 섭리로 인류가 구원되리라고 믿고 계신지요? 오늘 우리들이 깊게 성찰해야 할 우리 신앙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