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7. 09:39ㆍ말씀묵상/강론
+ 찬미 예수님
깨달음.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생경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원효 대사는 ‘발심’이 첫 번째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발심이란 처음으로 부처의 제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9분의 입교자분들께서 교회에 발을 들이는 날입니다. 마음을 내는 날, 귀의 한 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날. 물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라는 구체적인 결심이라기 보다는 인생에서 뭔가 더 값진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 교회에서 그것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발심이고, 사실은 제자가 되려는 첫 발을 내 딛는 것이며 첫 번째 깨달음입니다. 우리 교우분들도 처음의 그 마음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3가지 조건입니다. 먼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라, 둘째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라, 셋째 자기 소유를 다 버려라. 복음은 전합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뒤를 돌아서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작 될 수 없다”
이 문장에서 먼저 ‘미워하다’라는 말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인데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10,27)에서는 ‘미워하다’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 이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주석서에서는 희랍어나 아람어에서는 비교급이 없어서 ‘덜 사랑하다’를 ‘미워하다’로 표현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의미의 번역은 마태오 복음처럼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녀, 형제 자매, 내 목숨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나는 부모님, 가족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무탈하기를 아픔과 슬픔이 없기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잘 되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나누려 합니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인간을 사랑할 때는 그 사람들이 잘되기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1)예수님이 잘되길 바란다 2)예수님을 배우고 따른다, 어떤 것이 적합합니까? 이상하게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되기를, 그분의 삶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잘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법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이나 배우자, 형제들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을 인간적으로만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와 그들이 모두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되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로 등장하는 제자되는 법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상징입니다. 여기저기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그림이나 조각은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 안에 부활이 이미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되는 두 번째 방법. 바로 십자가를 지고 그분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지고’라는 표현은 희랍어 원문으로 ‘바스타제인(bastavzein)’이라고 합니다. 이 바스타제인은 그런데 무거운 것을 억지로 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루카복음 11,27절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말했다”라는 구절에서 ‘선생님을 배었던’의 ‘배었던’이 바로 바스타제인입니다. 아기를 배는 일은 고귀하고 소중한 일이며 정성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할 때 십자가를 '지고'는 어감상 십자가를 ‘소중히 안고’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벗어나야 할 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안고 품어야 할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준주성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즐겁게 십자가를 안고 간다면, 그 십자가는 당신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당신이 마지못해 십자가를 진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짐을 지우는 것이며 그 짐은 점점 무거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 짐을 지지 않을 수는 없다. 당신이 하나의 십자가를 내팽개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십자가,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인간도 피하지 못한 것을 당신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준주성범의 토마스 아 캠피스의 말처럼 결국 그리스도인은 환난과 고통중에서도 구원받은 존재이지 환난과 고통에서 구원받은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두 번째 조건, 십자가를 소중히 안고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는 사람이라야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이 조건 앞에 탑을 쌓기 위해 견적을 내고 전쟁을 하기 위해 계산을 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일을 완수하기 위해 물질이나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오히려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 지니지 않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앞의 두 조건,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십자가를 소중히 안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입교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분들과 우리 모두,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세가지 조건,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십자가를 소중히 지고, 그러기 위해서 나의 것을 내려 놓을 수 있기를 이 미사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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