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1. 17:23ㆍ말씀묵상/강론
+찬미예수님
예전에 배우이자 가수인 임창정 씨가 그러한 일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된장국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기억을 되살려서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명태와 새우, 다시마와 멸치등을 우려내서 국물을 내봤는데 아무래도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음식에 소고기 다시다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정말 어머니가 만들어준 그 음식 맛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소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소고기 다시다가 없었으니 소금이 맛을 내는 중요한 재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소금만 넣으면 소금국물일 뿐입니다. 그저 짜기만 하고, 심하게는 쓴맛도 납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먼저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조화를 이루려면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와 행동이 주장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것과도 어울려야 합니다. 만일 소금이 다른 맛들을 모두 죽여버린다면 그 음식은 맛없는 음식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다른 재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소금이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울러 의미합니다. 국을 끓였는데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맛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소금을 뱉어 버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짠맛을 잃은 소금이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만다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소금이 녹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고 그래서 쓸모 없어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녹여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오늘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도 그와 유사합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뛰어난 웅변가였고 행동가였으나,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워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십자가의 죽음이라 여겼습니다. 이는 자기를 녹이는 행위입니다. 십자가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자신을 가장 잘 드러냈습니다. 소금이 녹아야, 즉 자신을 죽여야 짠맛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그는 왜 약하다고 떨렸다고 고백 했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능력만 믿고 십자가의 죽음을 살아내지 못하면 참다운 생명력을 상실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어 아무런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힘, ‘성부’, ‘성자’, ‘성령’ 가운데 성령은 친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 사제가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성령의 힘은 나를 과시하는 힘이 아닙니다. 그리고 혼자 하느님을 드러내는 힘도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친교를 위해 의미를 가집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사랑의 친교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친교와 조화 안에서 하느님을 드러내 줍니다. 그것이 참다운 생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 말미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소금이 그러했듯, 빛이 그러했듯, 우리들의 착한 행실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을 찬양하게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입으로만 외치는 거짓 찬양이 아닙니다. 신앙인인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그 안에서 참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하여 함께 있는 것이 기쁜 일이 되는 그런 찬양. 입으로 외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충만한 기쁨입니다. 그들의 행복은 우리들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들도 모르는 사이 성령의 친교에 함께 한 기쁨입니다. 함께 어울려 맛을 내고 있음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우리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나를 녹이고 있는가?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인정함으로써 그들도 자신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기뻐하게 했는가? 나는 내 말만, 나의 옳음만을 주장하지는 않았는가?
소금처럼 빛처럼, 함께 맛있고 함께 밝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우리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러한 제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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